스타러브피쉬 신보가 나왔어요 그림 일기




오늘은 좀 피곤했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틈틈이 기분좋은 책을 읽었다.
햇살이 보일 때면 커텐을 걷고 해바라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선, 허전... 맥주 한 잔을 따라 방에 들어왔는데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멜론에 들어갔더니 스타러브피쉬 신보가!

작은 배...좋다.

스타러브피쉬는 혼자서 즐겨 듣는 노래다.
때로 우울을 즐기는 내게는 단비같은 음악.
미안, 회색숲. 두 곡은 특히 아꼈다.

스무살에 알게된 노래들은 아직도 즐겨듣고 생생히 기억난다.
재주소년, 미선이, 루시드폴, 박정현, 이규호, 김광석...
그 시절, 멋진 귀를 가진 분 덕분에 알게된 음악들.

듣고 있으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그리운 사람이 늘어나고,
음악에도 체온이란 게 있는 것 같았다.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차지했던 당시 플레이리스트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 끌어다가 담아놓곤 한다.
그럴 때면 미니홈피 없앤 게 후회되기도 한다. 내가 산 곡들도 있지만 선물 받은 곡들도 꽤 많았는데.


진달래타이머 - 미선이
전야제 - 박정현
왜 - 이선희
춤 - 클래지콰이
바람이 분다 - 이소라
시시콜콜한 이야기 - 이소라
로렐라이 - 델리스파이스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 루시드폴
부서진 입가에 머물다 - 넬
날개- 못

>>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적어둬야 겠다.




- 청춘시절에 듣던 노래를 나이가 들어서 들으려면 어느 정도의 통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청춘시절에 먹던 음식을 늙어서 먹는다고 해서 가슴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다.
노래는 가슴을 울게 하고 음식은 심장을 뛰게 한다.  <소울푸드> 김창완의 글 중에서 


1인극 <정상> 후기 - 네번째 딴따라 일지

 공연을 볼 수 있는 각도를 유념해서 전부 의자를 배치했다. 스텝들과 지인들은 서서보기로 작정하고. 관객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마트에 가서 맥주와 주전부리도 사다 나르고, 빛이 들어오는 창마다 신문지를 붙였다. 모든 스텝과 배우가 공연장을 꾸미는데 집중했다. 전날 최종 리허설에서 카페 뒷공간을 가릴 천을 무대에 설치하고 조명설치까지 완료한 상태였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또 해야할 것이 보였다.
출입구 빛을 막기 위해 커피자루를 붙이는 기봉
진행원고를 체크하는 달님
무대 뒷켠에서 목소리만 듣고 음향을 체크하는 호일
산의 위치와 조명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호
퍼포먼스 준비를 위해 맥주를 마시는 윤진.
그리고 그들을 찍는 효진

이제, 마지막 리허설.


 멀게는 부산, 가깝게는 같은 동네에서...
 문화기획자, 백수, FD, 방송작가, 크레인기사,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금소극장을 찾았다. 

한 남자의 정상을 향한 집념에서 극은 시작되지만
정상은 점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관객들은 정상에 올라가기도 하고,
함께 정상을 밟고 춤을 추고
끝내 모두 정상위에 선다.

관객과 배우의 자리가 바뀌는 곳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은 40분여정도 공연되었다.
기봉씨는 리허설 때보다 훨씬 더 능청맞게 잘했다. 음향도 연습 때보다 자연스러웠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물론 얼떨떨한 반응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을 열고 같이 웃어주어서 고마웠다.

이어서... 배우, 작가와 함께 이야기하는 정상회담
작품과 스텝에 대해 궁금한 점을 풀어놓고, 질문을 받기도 했다.  

뻔한 질의응답만 있는 정상회담으로 끝내면 섭섭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
당신의 비정상을 위로합니다 - 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배제하면
그냥 누가 더 똘끼 충만인가? 난상 배틀 붙는 비정상회담
특별히 상장도 준비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해 스텝들만 자폭했다.
윤진씨는 생방송 삭발사건을 이야기해서 <비정한상>의 주인공이 되었고,
돈 한푼 없이 타로카드만 가지고 도보여행을 했다는 청년이 <정상>을 받았다.
나는 이 자리가 비정상 같다고 이야기해 야유를 받았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 홍윤진씨의 퍼포먼스 <욕망>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대로 관객 모두는 5분여동안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겪었다. 기괴한 음악과 관객들의 반응도 모두 인상깊었다.

연극후기를 쓰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끔은 이런 방식으로 연극을 올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다음 공연에 또 초대해주세요" "카페에서 이런 시도, 재밌다"
"작가지망생인데... 이런 것도 공연이 되다니, 쓰고 있는 작품에 용기를 얻었다"
"평가를 하기보단 시도 자체가 신선하고 따듯했다"

등등 부족한 연극에 한 마디씩 말을 보태주고
격려해준 사람들의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말은 계속 이런 '돈 안되는 짓'을 해도 좋다는 긍정의 봄바람처럼 느껴졌다.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속 글을 써야하는 작은 이유들이 되기도 했다.

와주신 관객 여러분과 마음써주신 지인 여러분
무엇보다 함께 연극을 만든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앵콜은 없다.
이제 정말 끝이다.


1인극 <정상> 후기 - 세번째 딴따라 일지

 오랜만에 찾은 외가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다. 몇 번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끔 내 이야기를 했단다.

"네가 우리 집 가자고 손을 끌고 갈 때 참 귀여웠다더라. 그런데 막상 집에 도착하면 할아버지랑 안 놀아주고 혼자 씽 가버려서 놀더라고... 그게 섭섭하고 또 섭섭했다더라"

 어릴 적의 내가 무엇을 알았겠냐만.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나는 늘 사람들 속에 있어야 안심했지만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가족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막상 부대끼다보면 혼자 있고 싶어졌고, 친구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피로감을 느꼈다.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어릴 적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나?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찡하고 아팠다. 알게 모르게 나는 사람들에게 숱한 상처를 줬을 것이다.

 연극은 부대끼며 만든다. 스텝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보수는 없었다. 창작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 없었을 때 분노하던 내게는 미안하고 또 미안한 일이다. 공연비로 받은 만원은 소품과 음료, 뒷풀이에 모두 투자되었다. 공연장소인 카페도 주인 기봉씨의 권한으로 무료로 썼고 가장 큰 소품인 산도 모두 호님이 준비했다. 호일님은 포스터 작업 뿐만 아니라 난생 처음 해보는 음향작업까지 해주었다. 연습실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디어 뱅크이기도 한 그에게 나는 짜증도 많이 냈다. 내가 진심으로 짜증내는 표정을 본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 서툰사람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더 즐겁게 연습을 이어나가게 했던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연습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 몰랐던 면들을 많이 알게 됐다. 팬클럽 창단식 전부터 인연을 맺어왔지만 술자리 한 번 없었던 사람들. 술 없이도 3-4시간 수다떨고, 굳이 차를 마시지 않아도 카페에 놀러가서 인사하곤 했었다. 연극을 준비하자는 마음이 서자마자 이 사람들을 떠올린 건 당연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살아가지만 어떤 일을 도모할 때마다 늘 웃으면서 동참해주었다. 정말 고맙다. 
     
 연극을 계기로 알게 된 공장노동자 홍윤진씨. 정말 끼많은 남자. 연극 당일 날 <욕망>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정상>에서 동료 목소리로도 출연했으며 연습할 때에는 관객역할 대행까지 맡아주었다. 5분 가량의 짧은 퍼포먼스였지만 나는 그를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욕망을 보았다. "사람들이 보고 불편했으면 좋겠다"고 명랑하게 말하던 그. 나는 그가 오랫동안 춤을 추고 불편한 퍼포먼스를 세상에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살만한 사람이니까.
 달님은 공공미디어 단잠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연극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배우를 노렸지만 안타깝게도(?) 진행과 홍보를 맡게 되었다. 일하는데는 똑순이다. 맡겨놓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만큼 신경써서 결과를 내놓는다. 카페를 공연장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관객의 수를 제한하기로 했는데 예약손님 현황체크라던지, 토크쇼에 필요한 상장도 직접 만들어왔다. 땀이 송글 송글 맺힐 정도로 진행을 열심히 봐준 달님에게 야광테이프를 빚졌다. 나는 그게 자꾸 생각난다.  
 블로그에 사용한 이 때깔나는 사진들은 정호님, 그리고 진이님의 작품이다. 특히 진이님이 메이킹과 공연 당일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특유의 반짝이는 눈으로 대본을 읽고 성심성의껏 피드백해주기도 했다. 막상 찾아보니 진이님 사진이 적다. 하지만 그의 페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열정맨인만큼 어디에 있든 좋은 자양분을 듬뿍 섭취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연극을 하면서 살이 빠졌다. 매일 야식을 먹는데도 살이 빠졌다. 연습을 하면서 관객이 되기도 했고, 음향효과가 들어가지 않았을 땐 바람소리 전문 배우가 되기도 했다. "휘이~" 지금도 애인은 내 바람소리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그게 그렇게 웃겼단다. 천을 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서 배우와 나눠마시는 일도 내 차지였다. 대본을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손과 발이 스쳐지나갔는지 모른다. 다섯페이지의 원고는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무대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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