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 죽여라! 사육사 눈물

한국 동물원 100년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30/2009103000023.html

  • 입력 : 2009.10.30 02:25 / 수정 : 2009.10.30 10:27

창경궁→창경원 만든 이토 히로부미는 개장도 못 보고 죽고…
"미군 폭격하면 맹수 탈출" 해방 직전 日帝가 독살
6·25때 사육사 피란간 사이 살아남은 동물없어 戰後 재건
"평양동물원보다 더 크게" 84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1909년 11월 1일 모닝코트(morning coat)를 걸치고 회색 중절모를 눌러 쓴 30대 중반의 사내가 창경원에 나타났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창경궁 전각을 뜯어내 만든 동·식물원 개원식에 참가하러 온 것이었다. 홍화문(弘化門·창경궁 정문) 밖에는 이 땅의 첫 동물원을 구경하려는 인파가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입장료는 어른 10전, 어린이 5전이었다.

존엄한 궁궐에 동물원을 들이자는 발상을 한 것은 일제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다. 하지만 정작 이토 자신은 개원식 닷새 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숨져 그 완성을 보지 못했다.

다음 달 1일이면 일제가 창경궁(昌慶宮)을 창경원(苑)으로 격하시켜 우리나라 첫 근대식 동물원의 문을 연 지 100주년이 된다. 창경원 동물원은 지난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고, 지난 4월에는 '서울동물원'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일제가 만든 창경원에서도 동물들은 순수한 추억만을 남겨줬다. (왼쪽부터) 새 식구가 된 기린은 긴 목을 구부리고 홍화문을 지나느라 애를 먹었고, 코끼리는 노랫말처럼‘과자를 주면 코로 받아먹었다’. (사진 아래 왼쪽부터)좁은 통에 반신욕 하듯 앉아서도 물장구를 잘 치는 북극곰과 새끼를 잘 낳아‘수출’까지 했던 하마도 유명한 식구였다. 홍학 떼는 궁궐 뜰에서도 늘 기죽지 않고 화려한 날개를 뽐내며 군무를 펼쳤다./조선일보 DB·서울동물원 제공
해방 직전 "맹수들 모두 죽여라"

'반달곰 2마리, 호랑이 1마리, 집토끼 18마리, 진돗개 1마리, 제주말 2마리, 고라니·노루 10마리….' 서울시가 1993년 펴낸 '한국동물원 80년사'에 나온 개원 첫해 창경원 동물원의 식구 명단이다. 총 72종 361마리로 우리를 꾸렸다. 동물들은 직접 포획하거나 기증을 받았으며, 일본·몽골 등지에서 수입한 동물도 있었다. 서울시내에 마땅한 가족공원이 없던 터라 벚꽃 철에는 하루 2만~3만명이 입장할 만큼 나들이 장소로 인기였다.

'백수의 왕' 사자는 1910년 일본 교토(京都)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한 쌍을 들여왔고, 코끼리는 1912년 독일에서 수입했다. 이때 한국에 들어온 하마 부부는 25년 동안 새끼를 12마리나 낳아 창경원에 '하마동물원'이란 명성을 안겨줬다. 1919년 7월엔 하마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해 경찰 수백명이 창경원을 포위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동물원 식구는 1936년 192종 675마리가 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동물이 속출했다. 1945년 7월 25일, 도쿄(東京)에서 무서운 명령이 창경원으로 긴급 전달됐다. "미군이 창경원을 폭격하면 맹수가 우리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니 미리 죽여 없애라." 사자·호랑이·곰 등 21종 38마리의 맹수에게 독약을 섞은 먹이를 먹였다. 그날 밤 창경원 일대는 맹수들의 스산한 울부짖음이 밤새도록 가득했다. 동물원 직원들도 모두 함께 따라 울었다.

동물들은 6·25 전쟁 통에도 수난을 겪었다. 1951년 1·4 후퇴 때 급히 피란을 떠났던 사육사들이 나중에 돌아오자 목숨이 붙어 있는 동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부엉이·여우·너구리·삵 따위는 굶거나 얼어 죽었고, 낙타·사슴·얼룩말들은 도살당해 먹을거리가 부족한 사람들의 식량이 됐다.

폐허가 된 창경원 재건은 1954년 시작됐다. 미8군이 동부전선에서 생포한 곰 1마리를 기증했다. 산업·조흥·상업은행과 경성방직·동아상사 등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500~5000달러씩 돈을 내 동물을 사들였다. 사자는 한국은행이 맡았고, 이병철 당시 제일제당 사장이 코끼리를 기증했다. 방일영 당시 조선일보사 사장도 수리부엉이를 기증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수입된 동물이 대거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시민이 마중을 나왔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동물원에서 먹이주기 체험행사에 참여한 어린이가 캥거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동행은 미래 동물원의 중요한 과제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평양동물원보다 크게 지어라"

1960년대 말이 되자, 동·식물원을 이전하고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연간 30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면서 궁궐의 훼손도 심해졌고, 새로 동물을 들일 공간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1977년 이전 계획의 윤곽이 잡혀 경기 과천 막계2리에 24만8000㎡(7만5000평) 부지가 선정됐다. 그런데 1978년 6월 당시 구자춘 서울시장이 "동물원을 평양동물원보다 크게, 국제 수준급으로 지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지는 당초보다 10배 이상 넓은 290만여㎡(87만8500평)가 됐다. 모의원 서울동물원장은 "시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북한을 다녀온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말을 듣고 그리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평양엔 우리보다 뭘 잘해놓았든가?"(박 대통령) "평양동물원이 대단합디다."(이 부장) "그래? 그럼 우리도 그보다 크게 짓지."(박 대통령) 이런 대화가 오간 뒤 서울시장에게 평양동물원(268만㎡·81만1000평)보다 크게 지으라는 지시가 전달됐다는 것이다.

마침내 1984년 5월 1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개장하자, 무려 75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나흘 뒤인 어린이날에는 100만명을 넘었다.

콘크리트 동물사에서 생태동물원으로

1990년대 이후 대형 놀이공원과 테마 동물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인기가 식었던 서울대공원은 2000년대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양몰이장 같은 새로운 볼거리를 마련했고 올해 '서울동물원'이란 새 브랜드도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된 동물 막사를 가능한 한 걷어내고, 자연 그대로의 서식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다음 달 1일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신유인원관'(新類人猿館), '서울동물원 역사관'도 개관한다. 신유인원관엔 동물의 지적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인지연구센터'가 들어서 내년 1월부터 운영된다. 침팬지 우리에는 '먹이 자판기'도 있다. 관람객이 우리 앞 작은 홈통에 떨어뜨려 주는 동전을 침팬지가 집어서 돌처럼 생긴 방사장 내 조형물의 뚫린 구멍에 넣으면 먹이가 나오는 것이다.

이원효 서울대공원장은 "동물원을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교감하며 동행하는 곳이자, 사라져가는 생물종과 그 서식처를 연구·보전하는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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